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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화폭에 담은 山中豪傑 기개, 국립중앙박물관의 ‘2022년 임인년 맞이 호랑이 그림 Ⅰ’ 전시회

임인년(壬寅年)인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다. 천간(天干) 10개와 지지(地支) 12개를 조합해 만든 60가지 간지인 육십갑자 중 흑색을 나타내는 천간 임(壬)과 호랑이를 뜻하는 지지 인(寅)이 만났다.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사람과 가축을 잡아먹는 동물로 공포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신으로 섬기며 존경하기도 했다. 조상들은 맹수인 호랑이의 그림을 문 앞에 걸어둠으로써 악귀를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올 것이라고 믿었다.

조선 시대 민족들의 그림인 민화에서도 당시 시대 상황과 작가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호랑이는 다양하게 해석됐다. 함께 묘사되는 사물에 따라서도 가치를 달리 부여했다. 호랑이와 까치를 한데 담은 ‘호작도’는 기쁜 소식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담았고, 호랑이 무늬가 그려진 ‘호피도’는 위엄을 나타내고 잡귀를 쫓는 수호의 역할로 활용됐다.

<삼육대신문>은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실에서 열리고 있는 ‘2022년 임인년 맞이 호랑이 그림Ⅰ’ 전시회를 다녀왔다. ‘용호도’, ‘산신도’를 포함해 15건, 18점의 호랑이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오는 5월 1일까지 관람 가능하다.

[사진 : 임민진, 이주빈 기자]

전시회에 발을 들이면 가장 먼저 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월하송림호족도’(月下松林虎族圖)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달빛 아래 솔숲 사이로 노니는 11마리의 호랑이를 담았다. 새끼를 돌보는 호랑이, 솔숲 사이에 어울려 놀고 있는 호랑이 등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장수를 상징하는 달 아래, 악한 기운을 쫓는 호랑이와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 임민진, 이주빈 기자]

‘용호도’는 용과 호랑이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작품이다. 용은 여의주를 쥐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며, 호랑이는 하늘로 뛰어오르고자 한다. 호랑이의 성난 표정과 선명한 줄무늬는 용과 호랑이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하늘의 대표이자 신성한 존재로 여겼던 용과 함께 호랑이를 그림으로써, 호랑이에게도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조상들의 뜻이 읽힌다.

전시회에서는 유독 ‘까치와 호랑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호랑이와 까치를 함께 그린 그림을 ‘호작도’ 또는 ‘까치호랑이’라고 부른다. 당시 조선 왕실은 새해에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세화로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주로 왕실과 귀족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던 호작도는 19세기에 들어 서민들에게도 유행했다.

[ 사진 : 임민진, 이주빈 기자]

포효하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 주위를 3마리의 새끼 호랑이와 4마리의 까치가 둘러싸고 있다. 작품의 오른쪽에는 ‘호랑이가 남산에서 부르니, 까치들이 모두 모여들다’(虎嘯南山, 群鵲都會)라는 문구가 한자로 적혀 있다. 날카로운 선이 아닌 부드러운 둥근 선으로 호랑이를 묘사해 친근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 그림 왼편에는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매미와 불로초, 수복강녕을 의미하는 딱따구리가 위치해 있다. 불로초, 딱따구리를 통해 평균 수명이 짧았던 조선 시대에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조상들의 바람이 드러난다.

[ 사진 : 임민진, 이주빈 기자]

두 번째 ‘까치와 호랑이’ 작품에서 호랑이는 새빨간 입을 보이며 까치를 바라보고 있다. 새빨간 입속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지만, 미소를 지은 모습을 통해 맹수의 위엄보다는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랑이의 몸통 윗부분은 줄무늬로 표현한 반면, 아랫부분은 표범의 점무늬로 그렸다. 줄무늬와 점무늬를 함께 그림으로써 호랑이와 표범의 무늬를 구분하지 않고 범(虎)을 나타낸 조선 시대 그림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여러 작품으로 구성된 ‘산신과 호랑이’는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 호랑이와 신을 함께 그린 ‘산신도’는 불교의 내용을 담은 불화 작품이다. 산신을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호랑이를 신앙의 존재로 표현했다.

[사진 : 임민진, 이주빈 기자]

첫 번째 ‘산신과 호랑이’는 노인 옆으로 두 명의 동자와 호랑이가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와 두 동자는 중앙에 앉아 있는 신령스러운 노인을 보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월의 무게와 권위를 상징하는 하얀 수염을 통해 호랑이를 신성한 존재로 나타냈다. 여기에 선한 눈빛으로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산신령을 바라봄으로써 호랑이를 익살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사진 : 임민진, 이주빈 기자]

두 번째 ‘산신과 호랑이’는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붉은색 옷을 입은 노인 주변으로 무섭고 커다란 호랑이가 엎드려 있다. 새빨간 눈자위와 또렷한 눈동자를 가진 호랑이는 앞서 소개된 ‘산신과 호랑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날카롭다. 하지만 뾰족한 이빨과 발톱이 보이지 않아, 산신의 힘에 대한 복종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노인의 붉은색 도포 위에 표현된 흰색 음영은 20세기 불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 기법이다.

이외에도 ‘맨손으로 호랑이를 상대하는 사내’와 ‘소나무 아래의 노승과 호랑이’ 등 호랑이와 관련된 많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무섭게 혹은 친근하게 표현된 호랑이를 통해 당대를 살아간 조상들의 바람과 호랑이의 용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회에 이어 오는 5월 3일부터 9월 4일까지 <2022년 임인년 맞이 호랑이 그림Ⅱ> 기획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이주빈 기자 <leejubin0104@gmail.com>

임민진 기자<septmimi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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