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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수요일

스토킹 처벌법 시행 8개월,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로 피해자 보호 강화돼야

지난해 3월 발생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해당 사건을 기점으로 스토킹 처벌법의 시행을 주장하는 여론이 강하게 들끓었다. 이후 같은 해인 4월 20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약칭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됐고, 10월 21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는 1999년 관련 법안이 최초 발의된 지 22년 만이었다.

스토킹 처벌법의 제정으로 ‘스토킹’ 행위 자체를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면서 ‘지속적 괴롭힘’과의 명확한 구별이 가능해졌다. 스토킹 처벌법에 따른 ‘스토킹 행위’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주거지·직장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통신 등을 이용해 글·영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주거 등에 놓인 물건을 훼손하는 행위 등이 있다. 법 제정을 통해 처벌 수위 역시 새롭게 마련됐다.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휴대•이용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폭행죄보다 강하게 처벌한다.

실제로 스토킹 처벌법 시행 6개월이 지난 4월 경찰에 접수된 전국 스토킹 피해 신고 건수는 1만 4409건에 달하며 하루 평균 약 9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법령 시행 전 하루 평균 신고 건수가 23.8건인 것과 비교해 4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시행 이후 석 달간 1336명, 하루 평균 14.3명이 스토킹 범죄 피의자로 형사 입건됐다. 스토킹 처벌법의 시행은 ‘스토킹은 범죄’라는 인식이 정착되고 피해 신고 건수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스토킹 처벌법이 범죄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스토킹 범죄 피해 신고 수는 증가했지만, 실제 재판까지 이어져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이 부과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가장 큰 맹점이라는 지적도 들려온다.

대부분 면식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가해자 처벌 여부에 대한 결정을 피해자에게 부담하는 것은 가해자의 합의 종용과 협박으로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의 의사대로 처벌이 가해질 때 앙심을 품은 가해자의 보복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2차 피해도 우려된다. 스토킹 범죄 자체만으로 육체적•정신적 피해가 상당한 피해자에게 반의사불벌 조항은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일이다.

최근 몇 년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짐에 따라 대중은 스토킹 범죄 처벌 수위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 개개인의 판단으로 임의적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불벌 조항이 가해질 경우, 처벌 기준이 모호해지며 스토킹 범죄를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스토킹 처벌법 제1장 제1조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와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절차를 규정함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스토킹 처벌법은 지난 22년간 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을 거쳐 제정됐다.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스토킹 처벌법이 과연 그들에게 안전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반의사불벌 조항으로 피해자가 떠안게 될 부담과 불안함의 무게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과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가 스토킹 범죄 근절의 첫걸음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유명무실한 법 조항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주시해야 한다.

김수정 기자<soojung2297@n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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