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서울시의 새로운 도시 슬로건 투표가 진행됐다.
앞선 ‘서울 브랜드 슬로건’ 시민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Seoul my soul(14만8466표·37.3%)’과 ‘Seoul for you(13만8825표·34.9%)’를 두고 시민들의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거세다. 게다가 이번 교체 과정에서 ‘기존 슬로건 유지’라는 선택지가 없었고, 불필요한 예산 낭비라는 지적까지 더해졌다. 새로운 후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은 결국 저조한 투표율(1만2656명)로 이어졌다.
서울시 슬로건은 2002년 ‘Hi Seoul’을 도시 슬로건으로 선포한 것이 최초다. 2006년에는 오세훈 시장이 ‘Soul of Asia’를 서브 슬로건으로 사용했고, 2015년 고(故) 박원순 시장이 ‘I· SEOUL·U’로 전면 교체했다. 서울시는 4월 발표 예정인 최종 브랜드를 포함해 지난 21년간 도시 슬로건만 3번이나 교체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슬로건 변경 이유에 대해 “‘I·SEOUL·U’의 의미가 모호하고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7년 넘게 사용한 슬로건을 갑자기 교체한다는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도시 슬로건 교체를 단행한 서울시를 향해 ‘지자체장 교체 시기에 맞춰 치적 쌓기를 위한 일’이었다고 비판한다.
서울 곳곳에 설치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은 ‘I·SEOUL·U’ 조형물도 지난 3월 모두 철거됐다. ‘I·SEOUL·U’ 조형물은 설치에 약 11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됐다. 신규 슬로건 변경 과정에서도 조형물 철거·설치와 지속적인 홍보로 인해 막대한 혈세 지출이 우려된다. 슬로건 교체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세금 낭비라는 인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부산시도 지난 1월, 20년 만에 도시 슬로건을 바꿨다. 2003년부터 사용한 ‘Dynamic Busan’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Busan is Good’이 새롭게 선정됐다. 부산시는 “기존 슬로건은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 부산의 위상과 품격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시민들은 슬로건의 교체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시민들 사이에서는 ‘밋밋하다’, ‘다른 도시 슬로건과 비슷하다’는 기대 이하의 반응이 지배적이다.
대구시도 18년 동안 유지된 기존의 슬로건 ‘Colorful DAEGU’를 홍준표 대구시장의 취임과 함께 ‘Powerful DAEGU’로 바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브랜드 가치 제고에 관한 조례’의 개정이나 시민사회 동의 없이 결정돼 논란을 자초했다.
도시 슬로건은 지역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도시의 첫인상이다. 잦은 슬로건 교체는 지역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어렵고 ‘상징’의 의미도 퇴색된다. 또한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 그 자체만으로 도시와 시민을 잇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슬로건을 정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슬로건이 고유성을 갖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배건효 기자<ghism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