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에서 복무하던 고(故) 채수근 상병(이하 채 상병)이 예천군 호우피해 복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순직했다.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된 고인은 급류에 휩쓸려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구명조끼 미착용 상태여서 논란이 일었다. 채 상병 외에도 임무에 투입된 장병 8명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당일은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가 철수할 정도로 하천 유속이 빨랐다.
이번 일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안전 장비 부재와 무리한 지시로 인해 발생하게 된 명백한 인재(人災)다. 사건 발생 이후 박정훈 전(前) 해병대 수사단장이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됐으나 돌연 국방부 검찰단이 자료를 회수했다.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군 내 부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국방부는 경찰에 자료를 넘겨야 한다. 군이 자체적인 규정과 조작을 하지 못하도록 개정된 법안에는 ▲성폭력 범죄 ▲군인 등의 사망사건의 원인이 되는 범죄 ▲군인 등이 그 신분을 취득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 ▲이들 범죄와 경합범 관계에 있는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의해 군은 초동 조사에서만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초동 조사는 사실 확인 및 혐의점을 판단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국방부는 사건 자료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사를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혐의 여부를 결정했다. 이는 개정 군사법원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며, 국방부가 사건 자료를 임의로 회수하고 재검토한 것 또한 명백한 위법이다. 군사법원법을 개정했음에도 허점은 여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망사건에 대한 원인 조사를 군에서 하도록 한 개정 법안의 내용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군대는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 조직이다. 그렇기에 더욱 투명한 수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2014),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2021), 그리고 이번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2023)까지 시간이 지나도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 매번 비슷한 일이 일어나도 꼬리자르기식으로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기억에서 흐릿해진다.
채 상병의 유족들은 “자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자국민을 죽였다”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을 전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해 나라를 지키는 청년들을 국가는 책임을 외면하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통계청 ‘군사망사고현황’ 자료에 따르면, 군대 내부 사망 사고가 2020년 55명에서 2021년 103명으로 급증했다. 군대 안에서 많은 장병이 비극을 맞고 있지만 군 당국의 반복되는 책임 회피와 변명은 군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한다.
그간 군사 당국은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군사법원법을 개정하고 훈령을 수정하는 등 세부 지침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형식적인 확실한 진상 규명을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고 앞장서 말과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제2, 제3의 채 상병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입대(入隊)는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명예로운 일이다. 우리 청년들의 명예가 빛나기 위해서 더는 부조리한 수사와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배건효 기자<ghism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