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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공영방송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 다큐멘터리 <공범자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했다. 이 위원장은 임명 후 첫 회의에서부터 공영방송(KBS, MBC, EBS) 이사진 교체를 시도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영방송 이사·경영진을 교체·해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를 두고 ‘정부가 공영방송을 탄압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동관 위원장은 국회에서 탄핵을 추진하자 사의를 표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달 13일에는 윤 대통령의 임명안 재가로 박민 신임 KBS 사장이 취임했다. 박 사장은 취임 확정 직후, 사전 예고 없이 간판 뉴스 앵커와 진행자를 교체하고 프로그램 편성을 삭제하는 등 내부 규정을 무시한 경영행보를 이어갔다. 박 사장은 이와 관련해 취임 이틀째인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불공정 편파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자나 프로듀서에 대해서도 엄정한 징계를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는 박 사장의 취임 이후부터 현 정부에 편향된 내용을 우선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진=네이버 영화/영화 ‘공범자들’(2017)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실제 취재 과정을 담았다. <공범자들>의 감독이자 뉴스타파에서 활동 중인 최승호 PD가 직접 취재에 나섰다. 2017년 개봉 당시 5명의 MBC 전·현직 임원이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위기가 있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해 예정대로 개봉했다.

공영방송 몰락의 서막

<공범자들>은 국민의 시선에서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과 공범자들의 정체’를 파악해 나간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새롭게 취임한 이병순 KBS 사장은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이었던 ‘시사 투나잇’, ‘미디어 포커스’를 폐지하고 탐사보도팀을 해체했다. 곧이어 빈자리를 ‘대통령 홍보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다. MBC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보도한 ‘PD수첩’의 PD가 체포됐고, 정권에 비판적인 멘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차시켰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영방송의 편파 보도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MBC는 진실을 은폐하고 ‘탑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KBS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영화는 당시 언론 보도의 내막을 알린다. 공영방송 뉴스 보도에 정부 인사와 방송사 경영진의 개입한 사실을 폭로한다. 공영방송이 얼룩졌다.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언론 탄압

영화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의 언론 탄압 과정을 담고 있다. 두 정부는 취임 직후 정부에 반하는 여론이 조성되지 않도록 공영방송을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주요 경영진이 교체되거나 해임되는 등 압박이 계속된다. 언론인들의 투쟁과 희생에도 두 정부는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교묘하게 탄압을 이어간다. 영화는 ‘언론 자유’가 무너지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공범자들>은 지난 10년간 국민이 알 수 없었던 탄압의 실체를 보여준다. 수많은 프로듀서와 기자를 비롯한 노동조합원들의 노력으로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과 공범자들이 역사에 기록됐고 그 사실이 국민 앞에 밝혀졌다. 영화 말미, 정부의 끈질긴 탄압에 투쟁해 부당 징계를 받은 언론인들의 이름이 차례로 등장한다. 반복되는 억압 속에서도 언론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잃지 않았던 이들 덕에 진실이 규명된 것이다.

영화가 고발하는 당대 상황은 현 정부의 행보와 겹쳐 보인다. 타당한 이유 없이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갈아치우고,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출연자를 하차시켰다는 점. 편파보도를 중단하고 공정한 방송을 만들겠다는 거짓된 약속까지. 언론의 자유를 속박하는 권력의 횡포는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개봉 당시 최승호 PD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함께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맥락에서 영화의 제목이 ‘공범’자들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순응하는 것. 모르는 척 눈을 감는 것. 권력의 입맛에 맞춘 방송임을 알고도 시청하는 모두가 이 사태의 공범자가 아닐까.

객관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이 얼룩지는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다면, 이는 우리의 눈과 귀를 직접 막는 행위나 다름없다. 용기 있게 투쟁한 언론인을 기억하며 이제는 우리가 직접 공영방송을 지켜야 할 때다.

전지은 기자<jwings_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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