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열린 제19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 문제를 두고 다시 마주 앉았다.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분야 의료인력 확보 계획을 제시했고, 그 일환으로 의과대학 증원을 추진 중이다. 국내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3058명을 유지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조사한 ‘의대 정원 확대 관련 전국 40개 의대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들은 2025년까지 2151명~2847명, 2030년까지 최대 3953명 증원을 희망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여당과 야당 모두가 “민생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동의하고 있다. 국민의 의견은 어떨까. 보건의료노조가 지난달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의료취약지와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의사를 충원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827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민 여론도 의대 증원 ‘찬성’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의협은 지난달 26일, 전국의사대표자 및 확대 임원 연석회의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이 지속될 경우, 파업 여부를 두고 전체 찬반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이날 “정부의 편파적 수요조사와 독단적 발표에 의료계가 매우 분노하고 있다”며 ‘근거 없는 조사를 근거로 한 여론몰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의료 공백과 지역 의료서비스 문제를 의대 증원으로만 해결하려는 점을 지적했다. 게다가 그동안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해온 방식이 아닌, 정부 단독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협의가 되지 않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당시, 의협은 집단 휴진과 의사 국가시험 거부 등의 방법으로 정부에 강하게 대응했다.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로 재차 붉어진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의협은 파업을 진행하는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집단 휴진은 의료법상 진료 거부에 해당해 처벌받을 수 있다. 의사들이 말하는 파업은 ‘진료 거부’를 뜻하고, 이는 마치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협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협은 필수의료 분야에 부족한 의사도 기존 인력 재배치로 충분히 메꿀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7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권이다. 의사 수가 부족하면 지역 편차가 심해지고 초고령 사회의 수요에 공급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료시설이 없는 곳은 의료비가 증가하더라도 마땅히 의사 수를 늘려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 이후 지자체, 시민단체, 대학 등에서는 의대 증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시점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의협뿐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 환자와 의료 대상자, 지역의료 현장 주민들이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따라서 국민여론을 바탕으로 정부와 의료단체가 협의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의협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결사반대만 외치고 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직업의 소명으로 삼는다. 의사들은 특별한 일을 하지만 결코 특권의식을 느껴서는 안 된다. 목숨을 담보로 집단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의사들의 정당한 이권 취득을 위해서라면 의료인력 분배를 개선하고 의료 수가 체제를 수정해 의대 증원을 추진해야 한다.
배건효 기자<ghism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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