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끝자락 달동네 ‘희망촌’ 일대에 서서
우리나라는 6•25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크고작은 진통을 견뎌야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생긴 빈민은 산비탈이나 외진 고지대에 무허가 주택을 지으며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지조차 기댈 곳이 되지 못했다. 1960년대 말 시행된 ‘도심시가지정비사업’은 청계천 변에 있는 무허가 주택을 대규모로 철거하고, 거주민을 내쫓았다.
서울의 도심은 재개발을 통해 체계적인 신시가지를 조성했지만, 그 뒷면에는 쫓겨난 거주민의 설움이 존재했다. 그들은 대규모로 조성된 도시의 외곽 빈민촌에 자리 잡으며 희망을 향해 나아갔다.

서울 노원구와 남양주시의 경계에 있는 4호선 불암산역(구 당고개역) 인근에는 그렇게 생겨난 빈민촌이 유지되고 있다. 합동마을, 양지마을, 그리고 희망촌이 도시 발전의 과정에서 숨겨진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 위치한 달동네는 인위적으로 형성된 마을인 만큼 좁지만 일자로 뻗은 골목길과 비슷한 모양과 크기로 구성된 구획을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 낙후된 동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변모하기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벽화를 그려 넣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고양한다.


골목 사이사이 생긴 오래된 집들은 가스 배관 시공이 어려워 아직도 연탄보일러와 난로를 사용하는 가구가 많다. 그 어려움을 방증하듯 길거리에서는 연탄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민촌이 위치한 상계 3,4동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상계뉴타운’ 재개발 예정 구역으로 지정됐다. 무허가 건축물이 많아 붕괴 위험이 커 서울시는 이른 시일 내 재개발에 착수하려 했다. 하지만 거주민 보상 문제와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진전이 더디다. 그 덕에 동네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과거의 이곳 역시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이미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가 된 가옥과 상가들 사이 떠나간 이웃을 그리워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이 공존한다.




불암산과 수락산에 둘러싸인 탓에 높은 곳에 있는 동네는 끝없는 언덕과 수없이 많은 계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는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사진 20=송겸 기자/가파른 계단>

발전된 도심 이면에 자리 잡은 강제 이주민들의 삶의 흔적. 노고 속에서도 따뜻함과 웃음을 잃지 않으며 희망을 좇는 이들의 아름다움은 동네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로 나타난다. 현대사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동네는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와 보존 가운데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네지만, 쉽사리 발길을 뻗기 힘들다. 언덕과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피곤해진 몸과 달리 어딘가 모르게 가득 찬 마음을 안고 고즈넉이 동네를 바라봤다. 사랑이 가득한 동네만큼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것이 있을까. 불암산역 인근은 서울둘레길 코스 중 일부로 포함돼있다.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산책로 사이 어쩌면 사라질 수 있는 동네를 한 번 더 눈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송겸 기자 <salvadorinmyroo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