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구릉은 불길에 무너졌다. 단지 ‘재난’이라고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크고 처참하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초대형 산불은 영남권을 휩쓸었다. 비슷한 시기, 강원도 홍천과 인제, 충북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났다.
정부는 국가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진화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을 끄던 소방헬기가 추락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주택과 농가 등 수백 채가 전소됐다.
산림청의 ‘2022 산불 통계연보’에 따르면, 연간 592건의 산불 중 60.3%가 인위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입산자 실화가 33.6%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도 논밭두렁 소각(12.3%), 쓰레기 소각(10.3%), 담뱃불 실화(4.1%)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렇듯 예방 가능했던 불씨들이 결국 거대한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산불 피해 면적은 약 2만5000 헥타르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87배 수준이다. 직간접적 경제 피해는 약 936억 원으로 추산됐다.
피해는 비단 산림 훼손에만 머물지 않고 기후·물류·관광·주거·인명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영향으로 고온·건조한 날씨가 반복되며, 대형 산불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불은 강풍을 타고 시속 30~40km의 속도로 확산하며, 불씨 하나가 순식간에 마을 하나를 덮을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가 불을 낸 건 아니니 상관없다”는 방관의식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입산금지구역을 수시로 넘나들고, 산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른 풀더미에 불을 지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읽거나 평생 쌓아온 보금자리가 전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빚어진다.
방화에 대한 처벌은 강화됐다. 하지만 실화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산불 가해자 392명 중 절반 이상이 훈방 또는 경미한 과태료 수준의 처분에 그쳤다. 실수로 불을 냈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가 수백억에 달하고 수십 명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몰랐다’, ‘실수였다’는 변명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제재에 나서야 한다. 입산금지구역 출입 통제 강화, 위험물품 반입 기준 정비, 실화에 대한 과징금 및 형사처벌 기준 상향, 산림 내 자동감지 시스템 확대 도입 등 선제적 예방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정책이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되도록 지역사회나 주민과의 소통 및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산불은 자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람의 방심, 사회의 관성, 제도의 빈틈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더 이상 “나는 불을 피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무관심이, 불을 지킨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산불은 바람이 키웠지만, 경각심은 우리가 껐다.
김정인 기자<evelyn5252@naver.com>

김정인 기자<evelyn525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