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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9일 토요일

사회적 재난 산불, 경각심 고취가 절실하다

검붉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구릉은 불길에 무너졌다. 단지 ‘재난’이라고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크고 처참하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초대형 산불은 영남권을 휩쓸었다. 비슷한 시기, 강원도 홍천과 인제, 충북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났다. 

정부는 국가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진화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을 끄던 소방헬기가 추락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주택과 농가 등 수백 채가 전소됐다.

산림청의 ‘2022 산불 통계연보’에 따르면, 연간 592건의 산불 중 60.3%가 인위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입산자 실화가 33.6%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도 논밭두렁 소각(12.3%), 쓰레기 소각(10.3%), 담뱃불 실화(4.1%)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렇듯 예방 가능했던 불씨들이 결국 거대한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산불 피해 면적은 약 2만5000 헥타르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87배 수준이다. 직간접적 경제 피해는 약 936억 원으로 추산됐다. 

피해는 비단 산림 훼손에만 머물지 않고 기후·물류·관광·주거·인명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영향으로 고온·건조한 날씨가 반복되며, 대형 산불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불은 강풍을 타고 시속 30~40km의 속도로 확산하며, 불씨 하나가 순식간에 마을 하나를 덮을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가 불을 낸 건 아니니 상관없다”는 방관의식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입산금지구역을 수시로 넘나들고, 산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른 풀더미에 불을 지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읽거나 평생 쌓아온 보금자리가 전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빚어진다.

방화에 대한 처벌은 강화됐다. 하지만 실화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산불 가해자 392명 중 절반 이상이 훈방 또는 경미한 과태료 수준의 처분에 그쳤다. 실수로 불을 냈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가 수백억에 달하고 수십 명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몰랐다’, ‘실수였다’는 변명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제재에 나서야 한다. 입산금지구역 출입 통제 강화, 위험물품 반입 기준 정비, 실화에 대한 과징금 및 형사처벌 기준 상향, 산림 내 자동감지 시스템 확대 도입 등 선제적 예방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정책이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되도록 지역사회나 주민과의 소통 및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산불은 자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람의 방심, 사회의 관성, 제도의 빈틈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더 이상 “나는 불을 피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무관심이, 불을 지킨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산불은 바람이 키웠지만, 경각심은 우리가 껐다.

김정인 기자<evelyn5252@naver.com>

김정인 기자<evelyn52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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