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여야가 전격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며, 기자는 마치 ‘기성세대의 계산기’ 안에 갇힌 느낌을 받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은 여전한데, 부담만 커졌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개혁’일까? 그렇지 않으면 ‘개악’일까.
여야는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에 전격 합의했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3%로 고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개혁안이 청년층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숫자만 조정한 ‘모수 개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재정 고갈 위기에 처해 있다. 보건복지부의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경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연금 제도 개편, 즉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구조개혁은 보험료율이나 지급 비율 같은 수치를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금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개인 적립식’과 같은 새로운 연금 체계의 도입이 거론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는 국민연금을 ‘구연금’과 ‘신연금’으로 나눠 운용하는 구조개혁안을 국회에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구연금)의 재정 부족분은 일반 재정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가입자들부터는 자신이 낸 보험료와 운용 수익만큼 받는 ‘완전 적립식 개인계정제’(신연금)를 도입한다.
KDI는 이 방식을 채택할 경우, 보험료율을 15.5%로 설정했을 때 소득대체율을 40%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연금 제도의 세대 간 형평성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연금 개혁 과정에서 구조개혁안은 본격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권이 단기적인 합의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배제된 것이다.
정치권의 이런 결정은 청년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가속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2023 국민 노후 준비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대 응답자의 78.9%가 ‘자신들이 노후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번 개혁안으로 보험료는 올라가지만,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미래에도 연금 수급이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청년층의 의견 수렴이나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청년층을 제외한 채 진행한 ‘졸속 합의’에 정치권 내부 젊은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의 3040세대 의원은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이어서 지난달 23일, 청년 의원 8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국민연금 개혁은 청년에게 불공평하다’며 향후 논의 과정에 청년세대 참여 보장을 요구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집단 역시 정치권의 이번 개혁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금연구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개정안이 “세대 간 불공평을 심화시키고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개악”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개혁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이 연금 제도의 주요 당사자인 청년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은 무엇일까? 청년세대가 분노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려면, 이제는 해결 방안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현재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청년세대의 참여를 제도 설계 과정에 포함하고, 보험료율 인상 외에도 근본적 구조 개편안에 대한 공론화가 병행돼야 한다.
청년이 빠진 개혁은 미래가 없는 개혁이다. 이제는 ‘숫자 놀이’에 불과한 모수 개혁이 아닌 근본적인 구조 개편 논의가 공론의 중심으로 올라와야 한다. 정치권은 국민연금이 청년층과 함께하는 ‘우리의 제도’가 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송겸 기자 <salvadorinmyroom@gmail.com>